지금 여기 행복 |
'미래에 대한 설계' 속 삶
- 미래에 대한 설계 속에서 살아가는 태도는 유익할 뿐더러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단순히 미래가 있다는 행복감을 누리고 싶어서 그런 설계를 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 설계의 실현성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저 순간의 욕망에 끌려서 '나는 장차....언젠가는....이렇게 살 거야'라고 상상하는 기쁨을 자신에게 선사할 뿐이다. 그 다음에는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면서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는 낡은 계획을 폐기처분한다.
그렇게 이 계획 저 계획을 전전하면서 아무 매력도 없는 지리멸렬한 일상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삶의 전부가 설계된 미래인 사람들
- 또 어떤 이들은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인다. 그들은 그 계획이 실현되지 않으면, 자신의 삶이 모든 의미를 송두리째 잃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주저 없이 자신의 시간을 바치고, 때로는 건강마저도 상할 지경이 된다.
이런 집중은 일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연애, 육아, 여행, 이사 등 때로는 예술적 창조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삶의 모든 충동이 그 단 한 가지 목표에만 고정이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계획의 끝이 보이면서, 그처럼 왕성한 충동이 갑자기 사라져버릴 위험이 있다.
열심히 계획하고 준비했던 이사, 여행, 책의 출간 등이 이뤄진 뒤에 여성의 산후 우울증과 유사한 우울증이 찾아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추억을 만들기 위한 목적의 계획
- 그들은 어떤 만찬에 참석하고, 어떤 좋은 구경거리를 보러가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전에 그런 데도 갔었지'라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 그 모든 활동을 의무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어떤 사회의 코드를 따르기 위해서 한 번쯤 봐줘야 할 것,
한 번쯤 들어야 할 것을 다 보고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경험되는 미래는 이미 과거와 다를 바 없다. 미래를 꿈꾸고 이상화하는 데 집착해서 현재는 미래와의 관계에서만 존재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항상 '나중'은 더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착각을 부풀려 간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 흘러가는 세월을 제대로 사는 법을 망각하기 쉽다. 이들은 매일매일, 순간순간이 던지는 제안들을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며 귀를 열고도 듣지 못한다.
외면하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삶, 우리의 현재, 우리의 몸 밖으로 도피하면서도 그 사실을 항상 의식하지는 못한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 도피는 금세 유일한 활로가 된다.
자신의 불만을 직면함으로써 야기되는 고통은 도저히 참아낼 수 없다. 그리고 일상의 요구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일상의 의무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크나큰 슬픔이나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사치이고,
그런 사치가 허락되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이다. 그렇다고 감정에 대한 자제력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허므 우리 몸이 더 이상 우리의 명령을 듣지 않게 될 위험을 무릅쓸 수도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말로 살고 싶은 삶의 실현을 나중으로 유예하고, 그 미래에 기대를 걸면서
'어떻게든 버티자'에, 특히 '지금 무너지면 안 된다'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받아들이기 힘든 몸과 마음의 한계
- 우리의 신체가 부과하는 한계, 우리 자신이라는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는 행방이 모연해진 성배를 찾듯이 이 작은 알약들을 간절히 찾고, 그 약에 마법 같은 첨가제가 들어 있기를 소망한다.
슬플 대 기뻐지고, 피곤해 죽을 지경일 때 컨디션이 좋은 것처럼 느껴지며, 겁이나서 견딜 수 없을 때 용기가 불끈불끈 솟아오르고, 누군가에 대한 살의를 느낄 때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마술적인 효력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 몸이 우리의 요구를 충족시킬 능력이 없다는 생각은 참을 수 없이 불쾌하다. 몸? 몸은 찍소리도 하면 안 돼. 몸은 활동적, 지적, 성적 차원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싶은 나의 욕구에 절대로 어긋나서는 안 돼....
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자기가 품고 있는 이상적 이미지에 부응하게 만들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우리 몸이 전능하다는 착각을 고수하고 있다. 세월의 마모도, 세월의 훼방과 그 무서운 영향력도 우리를 어찌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모든 것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좋은 평판'을 쌓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잘살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혹은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잘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우리의 욕망이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면 결국,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보다' 라고 믿으며 그저 계속 달릴 수밖에 없고, '욕망하는 척하기' 밖에 할 수 없다.
흔히대는 핑계들
- "치료를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요. 저는 할일이 아주 많은 사람이거든요. 잠 잘 시간도 부족한 형편인데요. 시간이 걸린다는 생각, 특히 일정이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 구속감만으로도 치가 떨려요. 제 문제들을 시시콜콜 털어놓는 일이 뭐가 그리 유익할지
모르겠네요. 물론 저는 많이 지쳐 있고,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가 많아요. 하지만 제가 잘 버텨나갈 수 있도록 주치의에게 적절한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아프면 안 되거든요. 저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 어떤 이들은 이렇게 해서 지속적인 흥분과 긴장상태에서 살아간다. 그러한 흥분이 피상적이라고 해도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되는 이유에서다. '안정', '정지', '부동'은 '죽음'의 동의어로 취급된다.
잡지에서 화려하게 차려 입고, 외출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런 사람들이 인생에서 즐기는 모든 일들을 볼 때, 제 자신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해요
즉각적으로 보이는 목표 실현을 위해
- "시간이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보이는 목표를 실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시간을 들여, 자기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한다. 인생을 새삼 재검토한다는 것은 더욱더 생각하기 어렵다.
비록 그들이 불만에 차 있고, 지쳐 있으며, 행복하지 못하다 해도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저 다음 약속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가장 긴급한 사항을 지키는 것, 특히 도중에 멈춰 서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동정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서 가다가 서버리는 이들을 용서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일에 치여 자기 목을 조르고 있다. 이따금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실상은 그렇게까지 대단치는 않다는 사실, 신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삶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시간을 온전히 바치는 자들은 오히려 그 삶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시간을 절대로 허비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들은 오히려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온몸의 모든 세포들이 기쁨으로 날뛰는 벅찬 행복의 순간들을 자신에게 선사할 수 있다. 일상의 행복을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온전한 참여', 가장 소박한 기쁨들의 강렬함을 매일매일 추구하고, 창조하고, 재현해야 한다.
관련 글: 우리 내면의 힘은 유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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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다
Reviewed by 해결사
on
6월 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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