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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을 감추고 나를 잃다 |
잃어버린 내면
저 자신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이는 제 모습의 내면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거든요.
저의 내면에는 텅 빈 공허함밖에 없다는 기분이 듭니다. 내가 매력적으로 보인다 해도, 그건 그런 척하는 것뿐이예요. 순전히 허상이지요.
- 어떤 사람들은 '내면' 이라는 것을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한 의미로 간주하면서 이야기 한다. 그리고 공허함이라는 구체적인 감정을 자기 내면세계의 현실이라고 믿는 것과 동일시한다. 그들은 자신의 어떤 인격을 타자들이 보지 못하도록 스스로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금기시된다. 그리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그들의 결심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점점 더 확고하게 굳어져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야기를 해봤자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실망했거나, 무관심 혹은 몰이해를 드러내는 반응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야'라는 확신을 품게 된 것이다. 감정을 토로한다는 것은 곧 '소문이 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로 자신이 느끼는 바를 털어놓지 않는다.
개인적인 사연들을 들여다 보면,
- 어쩌다 보니 그들이 일부 가족 구성원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부모가 쇠약하거나, 너무 어리거나, 미성숙한 사람들이거나, 심각한 개인적 문제들이 있거나 해서 자식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거나 혹은 자식에게 마땅히 쏟아야 할 주의를 쏟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대화상대가 없기 때문에 감정이나 자기만의 은밀한 생각들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된다.
저는 영화나 책을 볼 때가 아니면 보통 여자아이들처럼 소리 내어 울거나 깔깔대고 웃을 수 없었어요. 저의 감정은 저와 상관없고, 제 문제와 무관한 허구적인 등장인물들을 통해서만 표출될 수 있었던 거예요.
저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태도에 너무 많이 실망했기 때문에 또다시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요.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감정을 감추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지금은 제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해져서 아예 나 자신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지경이에요.
고독은 나에게 습관 같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그들에게 적의를 갖고 대한다고 생각하지요. 저도 압니다. 그런 제 모습이 오만해 보일 수 있겠죠. 저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고 싶어한다면, 나에게 다가오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바를 그들이 행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들이 그러한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저는 지겨울 정도로 요구를 했는데 아무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 우리는 마음에 맺힌 그 무엇을 악착스럽게 내면에 간직해야만 할까? 사랑의 감정이 벌건 대낮에 사람들 앞에 드러나면, 그때부터 우리는 약자의 입장에 처하게 된단 말인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그런 감정을 약점으로 보고 이용하기라도 하는가?
때로 우리는 행복을 느껴도 내색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꿈과 소망, 충동과 열광을 파괴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릴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때 그렇게 너무 많은 환상을 품는 게 아니었어"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정과 생각을 좀더 드러내고 사는 편이 좋을 수 있다
- 그것들을 말로 풀러놓음으로써, 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인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을 분명히 드러낸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이 불안하고 알 수 없는 세계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언제든 드러나는 날에는, 우리가 가하는 모든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까닭이다. 무시하고 싶은 것을 자기 자신에게 감추고,
자기 안의 열정을 스스로 알지 못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내면 생활을 완전히 은닉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바로 그 정서적인 격동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게 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혼자 비밀스럽게 간직했던 바를 스스로 발견하거나, 다른 사람들 눈에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내면을 감찰하는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그것은 자신을 기만하는 짓이다.
부정적인 사고, 파괴적인 생각, 죽고 싶은 마음, 아무에게도 고백할 수 없는 공격성 등 '나쁜 생각들'을 우리가 품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거나 감추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의 공격성을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어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은 참아내기 힘듭니다. 하지만 나의 이른바 친절하다는 태도 속에 공격성이 자꾸만 축적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지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런 마음을 표현해 본 적도 없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자꾸 내가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기분도 듭니다. 털어놓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어요"
내면세계와 싸우려는 노력이 치열할수록,
- 자신의 내면세계와 싸우려는 노력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언젠가 그 노력은 겉으로 드러나고 만다. 그동안의 억압이 심하면, 심할수록 감정은 격렬하게 표출될 것이다. 어려움을 거부하는 것과 그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감정의 어려움 역시 예외는 아니다. 빚이 있는데도 갚지 않으면 그 빚은 불어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빚의 상환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과 해결해야 할 빚은 점점 불어날 것이다.
지금 당장 표현하기 쉬운 것일수록,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기는 힘들어지고,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만 담아두기는 힘든 것이 되기 쉽다.
우리가 무시하고 싶다고 해서, 그런 감정을 쉽게 폐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바라는 것 이상으로, 오랫동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 모든 기생적인 현상들을 통제할 수 없다. 그래서 때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우리 자신은 생각지도 못했던
예리한 시각을 보여줄 때면 크게 놀라기도 한다.
"그이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지요. 그런데도 저는 도망가버렸어요. 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고, 자주 제 본심을 갖추고 거짓말을 하고는 했어요,"
- 내면 세계의 어떤 것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이 싸움은 결국 우리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듯한 고통스러운 감정만을 안겨준다.
"저는 항상 멋지게 보이려고 쉬지 않고 노력했어요. 아무도 저에게 조그만 흠집이라도 찾을 수 없게끔 말이예요. 저는 누가 제 흉을 보는 게 제일 싫었어요. 머리가 모자란다든가, 튼튼하지 못하다든가, 교양이 없다든가....."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치는 '나'는 믿을 수 없어요. 그 '나'는 저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투명인간 같은 존재가 되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이들은 남들에게 흠을 잡히지는 않지만,
남들의 관심 어린 시선 역시 전혀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괴로움을 겪게 마련이다. 자기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없다. 그는 고독과 심원한 혼란밖에 발견하지 못한다.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타인의 욕망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은 타인들의 시선 안에서만 존재하고, 그 시선들만이 그에게 삶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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