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 이미지 |
겉모습 뿐인 행복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거기 있는 모든 것이 즐겁고, 유쾌한 기분을 누리기 위해 존재했어요. 그건 축제였어요. 군중은 그곳에 즐기러 왔어요. 폭죽이 터지고, 사람을 꿈꾸게 만드는 음악이 흘러나왔지요.
하지만 저는 점점 더 서글퍼지기만 했어요. 제가 슬프면 슬플수록, 제가 느끼는 감정과 제가 그 상황에서 느껴야 할 감정의 괴리는 점점 더 커졌던 거예요!!
우리는 반복적이고 바보스러운 클리셰들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 모든 '외적' 성공의 본보기들에 휩쓸리기 쉽다. 다른 사람이 자기 행복을 보란 듯이 자랑할 때, 기쁨, 아름다움, 멋, 호사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듯한 그들의 삶의 외관만을 보고,
나의 삶은 부당함의 상징인 양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표상들은 동일시가 가능하다는 덧없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이미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요, 이미지를 통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현실 속에는 없는 이미지
- 우리의 생각은 깬 채로 꾸는 꿈과 비슷한 것에 휩쓸려간다. 우리 몸이 우리 아닌 다른 것에 속한 듯 사로잡혀 있는 이 상태에서, 일종의 정체성 상실이라고 부를 만한 이 상태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고, 타인의 삶을 사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우리를 꿈꾸게 하는 미지의 인물의 삶이 자기 삶인 양 오인하는 것이다. 이럴 때 사람은 자기 한계에 대한 의식을 잃는다. 행복은 금세 손에 잡힐 듯 느껴질 것이다. 그 행복은 완전히 정의되어 있고, 이미 만들어져 있다.
세트에 의상까지 포함해서 완벽하게 우리를 위해 마련된 무대와 같은 행복이다. 우리는 이제 역할을 반복적으로 연기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이미지들은 위험하다. 그것들은 항상 우리에게 외재적으로 남는 부유함을 보게 한다. 우리는 중첩된 이미지들을 통해서만 그 세계에 속할 수 있다. 그 이미지의 축제는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에게 불쌍한 성냥팔이 소녀 역할을 맡긴다.
우리는 그 소녀처럼 잠시 잠깐 빛나는 성냥불의 환상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치를 부여해야 할 것은, 반대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부유함이다. 우리가 이미 소유한 것들 중에는 다시 한 번 발견하고, 높이 평가할 만한 가치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의 불만에 대해 이유를 하나한 다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그런 일상은 참을 수 없는듯 느껴질 것이다. 그 삶은 더욱더 부조리한 좌절의 총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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