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고통스런 기억이 남긴 흔적 |
고통스런 기억이 우리 몸에 남긴 흔적
머릿속에서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아요... 그러면 정말로 구역질을 하게 돼요. 머릿속에서 병이 날 것 같다고 생각할 때마다 정말로 몸이 좋지 않아요. 내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면 왜 꼭 진짜로 몸에 이상이 생기는 걸까요?
- 슬픔을 묵인한 채 넘어가고 싶을 때조차도 몸은 정신적 고통을 반영한다. 가슴 아픈 일을 겪으면 실제로 우리 심장이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좌절, 슬픔, 분노, 공포를 무시하려고 해도 소용없다.
몸은 그런 감정들을 신체적 고통이라는 형태로 내보이면서 짖궂은 쾌락을 맛본다. 그리고 몸의 언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꿈 등의 통제할 수 없는 표현들은 이런 자아를, 그때까지 알 수 없던 자아의 욕망과 두려움을 발견하게 해준다.
일상생활에서 몸은 우리에게 자신을 공격하고 충돌해 오는 것을 끊임없이 알려준다. 공격의 대상이나 원인을 알아차리기 전부터도 몸은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처가 되는 말, 공격적인 태도, 잔인한 처사 등
우리의 육신은 타격과 상처를, 충격과 폭력을 감내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우리의 평정심을 흐트러뜨리고 욕망을 거스르기 위해 오는 외부의 모든 것들이 피할 수 없는 파급효과를 나타내는 일종의 장이다.
이 사실은 일상적인 언어를 통해 다시금 확인된다. 우리는 '주먹으로 명치를 두들겨 맞은 듯하다' 라든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하다'는 표현을 쓴다. 또한 '다리가 솜방망이 같다'느니, '목이 졸린 듯하다'는 표현도 쓴다.
우리의 몸은 외부세계에 대한 감각의 즉각적인 게시판과도 같다. 몸은 내밀한 감정들이 출연하는 극장이다.
기억을 촉발하는 사물과 추억의 연관성
어제 평소처럼 장을 보다가 너무 괴로워졌어요. 너무나 갑자기,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말이예요. 불안감에 압도되어서 손발을 옴짝달싹할 수 없었어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다리가 솜방망이처럼 무겁고 힘이 풀리더군요. 그러면서 빨리 이곳에서 나가야겠다는 절박한 욕구가 치미는 거예요.
- 우리도 그런 느낌을 안다. 그 느낌은 우리 삶의 일부다. 그러나 왜 그런 느낌이 엄습했는지 이유를 캐고 있다가 어느새 그 느낌이 언제 도 나타날까 전전긍긍하는 단계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 심적 위기는 어떤 뚜렷한 논리에 따라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 데서나 아무 때나 그런 느낌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 앞에 늘 드리워져 있는 올가미처럼 알지 못하는 위험에 우리를 언제고 몰아넣을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 머릿속에서 은밀히 진행되는 이 생각들은 무엇인가? 그 생각들은 우리를 아주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 사람이 불안해지면 익숙한 장소들도 갑자기 낯설어 보이고, 타자들의 시선이나 태도가 공연히 적대적으로 느껴지는 법이다.
어째서 가능한 한 빨리 이 자리를 빠져나가서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사소하고 덧없는 이미지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고통스러운 기억을 환기시킬 수 있다.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음악의 선율, 풍경, 향기.... 이것들은 아련한 추억을 즉각적으로 되살리고,
마음을 아프게 찔러대면서 불안을 억제할 수 없게 한다. 혹은 추억 자체는 기억나지도 않는데 그저 즉각적인 감정만이 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사건 자체보다도, 나중에 형성된 추억이 우리 기억 속에서는 사건 그 자체와 동일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해마다 어떤 기념일만 되면 언짢고, 불편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의식적 차원에서는 그 일을 잊어버렸지만, 몸을 통해 그날을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2월이면 우울증에 빠져요. 몇 년이 지나고나서야 깨달았어요. 2월은 우리 엄마가 자살한 달이라는 것을.
마찬가지로, 고통을 각성시키는 장소들이 있다. 우리는 과거에 속해 있는 이 감정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한 채 그저 고통만을 감지하는 것이다.
과거는 우리에게 영원한 기준이다
나를 뒤흔들지 마, 가득 고인 눈물이 쏟아질지도 몰라.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을 반복해서 겪다 보면, 그런 종류의 위협에 더 예민해질 뿐만 아니라 평소 같으면 무관심하게 넘길 사소한 일들조차 위협으로 느낄 만큼 연약해진다. 참을 수 있는 한도의 문턱이 자꾸만 낮아져서 별것 아닌 일에도 불안해하며 과장되게 반응하게 된다.
차츰 그런 긴장상태에 들어가면 몸이 자유롭게 기능하지 않고, 이른바 '기능적 징후들(symptomes fonctionnels)이 축적된다. 이것은 기능에만 이상이 있고, 신체적인 상해나 이상은 전혀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 징후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짜 병을 낳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일반적인 법칙에 따라서 자율신경계의 혼란이 기능적인 문제들을 드러내고, 그 문제들이 매우 심각해지거나 자꾸 반복되면서 조직화되고, 바로 그런 조직화는 기관장애로 굳어진다.
저마다 주어진 삶의 조건에서 참기 어려운 것을 표현하는 데에는 특화된 언어가 있다. "저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꼭 위장 쪽에서 신호가 와요, 지금은 아예 고질병이 되어버렸어요"
신체 조직의 과장된 긴장상태는 일종의 '틈'을 만든다. 여기서 '틈'이란, 연쇄의 고리가 가장 약한 지점이다. 체질적으로 특히 약하기도 하거니와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바가 의미심장한 신체의 한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은 본의 아니게 다른 식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지칭하는 데 쓰이게 된다.
기능적으로 나타나는 장애
다시 찾아오는 무력감
사람은 어떤 고통을 온전히 경험했을 때만, 그 고통에서 치유될 수 있다.
고통을 정신의 한구석에 처박아 두고, 그 존재를 고집스레 부인하면서 침묵하게 하며, 진통제와 진정제로 묵살하려 해도 소용없다. 고통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은밀하게 작용하는 것을 , 특히 우리의 건강을 갉아먹는 것을 결코 막을 수는 없을 테니까.
고통을 일으킨 원인을 제거하려면, 그 고통과 마주하기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 원인들이 끈질기게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오랜 시간을 불행하게 살아갈 것이고, 몸에서는 병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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