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벗어나기 |심리학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벗어나기

과거야~ 날 놓아줘!


- 동일한 고통, 오래된 고통이 인생 내내 지치지도 않고 반복되는 것 같다. 우리가 마침내 그 고통을 탐지하고, 그 고통에서 사악한 힘을 제거할 때까지, 아니면 우리가 본능적으로 그런 고통이 되살아날 법한 상황을 피하는 법을 터득할 때까지는 끝이 나지 않는 것이다. 

고통이 최초로 등장했던 상황은 규명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기억력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아주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 그런 고통을 야기했던 경험들은 그 오래된 고통의 재방송일 것이다. 

따라서 고통이 깨어나는 조건들과 그 고통이 우리의 몸에 즉각적으로 불러오는 반응들을 발견해야 한다. 어떤 반복적 상황에 대한 반복적인 반응, 무력한 관객에 지나지 않는 양 속수무책으로 겪기만 하는 것이다.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내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


- 거부, 버림받음, 부당함, 모욕 등의 상황에서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내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무력할 수밖에 없다. 

누가 나를 기다리게 하는 상황은 도저히 못 참겠어요, 그건 내게 있어서 내 시간을 부정하는 것이고, 나라는 사람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짓이예요. 그런 상황이 되면 잊혀졌다는 기분,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혀요. 버림받은 느낌이 들어요. 


이럴 때 우리의 모든 행동은 퇴행적으로 변한다. 절망적인 사랑에 대한 목마름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며, 존재하고픈 욕구로 울부짖는다. 타자의 시선에, 그가 우리에게 품었고, 그로 인해 우리가 머물 수 있던 그 사랑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잘 지낼 수 있단 말인가?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봐주고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확신이 없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 인정해 준다는 확인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존재할 수 있나? 


한 순간의 시선, 말 한마디, 어떤 특정 상황만으로도 과거에 비슷한 감정을 야기했던 그 무엇이 자연스럽게 되살아날 수 있다. 반사적으로 신속하게 일어나는 반응처럼, 몸은 자동적으로 몸의 고유한 언어를 써서 대답한다. 

다시 말해, 감정 혹은 신체기능상의 징후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위험을 알리는 외침이다. 조심하라. 우리는 때로 거절이나 모욕의 의미가 전혀 없는 태도조차 그렇게 받아들이니까!!


객관적으로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상황들을 자신에게 공격적인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무언가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순전히 우리의 과거 경험과 상상력이 결합해서 만들어낸 산물일 떄도 있는 것이다. 

과거의 외상에 너무 민감해진 탓에 다시 한 번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타자에게는 그런 생각이 없는데도,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떠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지레짐작한다. 

그리고 그에게 그 사람의 것이 아닌 역할을 맡긴 장본인이 우리라는 사실은 끝내 부정한다. 또한 우리는 멋대로 공격성으로 해석하지만, 사실 타자가 우리와 맺은 관계에서 그런 요소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항상 과거에 매여 있다


- 각자의 마음속에는 온갖 상황에서 객관적인 현실과는 무관한 이미지를 계속 틀어주는 작은 영화관이 있다. 거기서 상영되는 영화의 시나리오는 눈 감고도 줄줄 말할 수 있다. 처음에는 감정들이 깨어나고, 그 다음에는 묵주 알을 하나하나 헤아리듯 

불만과 끝없는 회한이 줄줄이 엮여 나온다. 치명적인 실패나 실망을 겪었던 이에게는 전개도 결말도 익히 잘 아는 장면들과 대사들이 거의 기계적으로 펼쳐진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모두가 날 미워해"에서 시작해서 "나는 안돼.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을 거야"까지.

불행한 운명에 대한 고통스러운 확신들은 주선율처럼 자꾸만 나타난다.   



과거에서 벗어나려면


- 생각 때문에 과거와 똑같은 상황의 끊임없는 반복에 갇히는 일이 없으려면, 우리가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는 인생을 분석하고, 성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생을 따라 쉼 없이 재탕되는 관계의 구조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자 애써야 한다.

미처 지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점점 더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그림들을 해체하기 위해 노력하자. 과거에서 후회밖에 건질 것이 없다면, 우리가 그때 하지 않았던 일, 허락되지 않았던 것, 쟁취하는 데 실패했던 것들에 대해 강박관념이 생긴다. 

그러면 머릿속은 점점 '그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왜 내가 그걸 몰랐을까', 같은 문장들로만 채워질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만약'의 행렬들은 이미 지나가버린 우리의 선택들을 다시금 고통스럽게 문제 삼는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쓰라린 감정이 마음 깊이 남게 된다. 


마음을 이해받지 못하면,


고통스러운 사건이 원인을 이해받지 못한 채로 남으면, 기억 속에도 한정되지 않은 시간 동안 남는다. 그 사건은 소화될 수 없으며, 그렇기에 두고두고 되새김질을 해야 한다. 유예상태에 놓인 질문처럼 소화되지 못한 사건은 우리의 발전에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이유도 모르는 상태에서 똑같은 위렵이 닥칠 수 있는데, 어떻게 두렵지 않을까? 과거의 경우들에서도 초연해지지 못하니, 새로운 경험들을 스스로 금지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가혹했던 과거에 대한 회한 때문에 살아가기가 힘이 든다. 그들은 자신의 불행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모두 벌주고 싶을 것이다. 그들에게 죄책감을 제대로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성공해서는 안 된다. 

무슨 수를 써라도 시험을 망치고 말겠어. 그게 바로 그들이 원하는 거야. 아무 소득도 없이 일 년을 허송세월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들도 아주 만족할걸!!


다시 한 번 욕구불만이 찾아오는 것을 참지 못한다. 욕구불만이야말로, 예전에 거부당했던 사랑에 대한 부가적인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신을 배반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주 예전에, 

간신히 기억날 만큼 오래 전에 자신을 배반했던 사람들에게 까지 원한을 품는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다시 한 번 그의 요청을 거부한다면? 그러면 그는 아주 유치하게 굴 것이다. 맨 앞줄에 가면 안 된다고 했더니, 심통이 나서 보란듯이 맨 뒷줄에 가서 서는 초등학생처럼 말이다. 


그런 사람의 불행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좀 봐!' 라고 보이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불행이다. 다른 사람들도 가능하면 내가 겪었던 불행을 겪어야 하니까, 


이따금 저는 건강하고 평안하게 잘 지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잘 지내는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닐 것 같아요. 내가 다른 사람이 된다면, 나는 죽어버린 거잖아요.

 

고통은 제 삶에 필수적인 겁니다. 제 고통은 사람들이 저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이유가 되지요. 저는 다른 사람들을 대하면서 계속 불행한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이런 사람들은 마치 바라는 것이 충족되지 않는 불만상태에서 살아기로 스스로 선택이라도 한 듯하다. 어떤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 이미 그들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는데, 만일 그들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면 그런 기대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타자에 의존하는 만큼 타자 역시 자기들에게 의존하기를 바랄 것이다.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 두려워요. 다른 사람 없이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가 두려워요. 그 사람 역시 나 없이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 두려워지듯이 말이예요.


그들은 머지않아 공격성과 증오를 통해서만 살아있다는 느낌을 얻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그런 두려움을 맞닥뜨리느니 다른 이들 앞에 불행한 얼굴을 내보이는 편을 선호할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오만 가지 근심을 내보이며, 불행의 증거들을 가능한 한 많이 제시하기를 

주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모든 공격을 면한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은, 대개 공격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법이니까. 대신 그들은 완곡하고 교묘한 수법을 써서 자신의 공격성을 표출한다. 


어째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냐는 힐책을 살기 힘들다는 넋두리로 위장해서 늘어놓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성에 대해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 떄문에 겪는 고통 혹은 질병을 모두가 볼 수 있게끔 내세운다. 

그들은 희생자 역할을 택하고, 질투심보다는 동정심을 유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불만은 공격적 충동과 그로 인한 죄책감이 절충된 결과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달라져야 한다 


- 몸은 결국 나쁜 습관을 쌓기에 이른다. 발작의 반복, 고통의 반복은 습관이 된다. 발작은 잠시나마 모든 내적 긴장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고, 이 계기를 통해 잠재적으로 깊이 자리 잡은 쾌락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마치 정신적 기관의 희열(jouissance)라고나 할까? 결국 그 사람은 감정이 해방되는 이 양식을 다른 양식으로 대체할 수 없다고 믿을 만큼 완전히 체화해 버린다. 점진적으로 이런 조건화된 감정 표현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좀 더 단순하면서 자기 파괴적이지 않은 표현양식들을 배우고, 또 배워야 하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벗어나기 |심리학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벗어나기  |심리학 Reviewed by 해결사 on 5월 22, 2023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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