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벗어나기 |
과거야~ 날 놓아줘!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내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
누가 나를 기다리게 하는 상황은 도저히 못 참겠어요, 그건 내게 있어서 내 시간을 부정하는 것이고, 나라는 사람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짓이예요. 그런 상황이 되면 잊혀졌다는 기분,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혀요. 버림받은 느낌이 들어요.
이럴 때 우리의 모든 행동은 퇴행적으로 변한다. 절망적인 사랑에 대한 목마름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며, 존재하고픈 욕구로 울부짖는다. 타자의 시선에, 그가 우리에게 품었고, 그로 인해 우리가 머물 수 있던 그 사랑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잘 지낼 수 있단 말인가?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봐주고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확신이 없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 인정해 준다는 확인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존재할 수 있나?
한 순간의 시선, 말 한마디, 어떤 특정 상황만으로도 과거에 비슷한 감정을 야기했던 그 무엇이 자연스럽게 되살아날 수 있다. 반사적으로 신속하게 일어나는 반응처럼, 몸은 자동적으로 몸의 고유한 언어를 써서 대답한다.
다시 말해, 감정 혹은 신체기능상의 징후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위험을 알리는 외침이다. 조심하라. 우리는 때로 거절이나 모욕의 의미가 전혀 없는 태도조차 그렇게 받아들이니까!!
객관적으로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상황들을 자신에게 공격적인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무언가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순전히 우리의 과거 경험과 상상력이 결합해서 만들어낸 산물일 떄도 있는 것이다.
과거의 외상에 너무 민감해진 탓에 다시 한 번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타자에게는 그런 생각이 없는데도,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떠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지레짐작한다.
그리고 그에게 그 사람의 것이 아닌 역할을 맡긴 장본인이 우리라는 사실은 끝내 부정한다. 또한 우리는 멋대로 공격성으로 해석하지만, 사실 타자가 우리와 맺은 관계에서 그런 요소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항상 과거에 매여 있다
과거에서 벗어나려면
마음을 이해받지 못하면,
무슨 수를 써라도 시험을 망치고 말겠어. 그게 바로 그들이 원하는 거야. 아무 소득도 없이 일 년을 허송세월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들도 아주 만족할걸!!
다시 한 번 욕구불만이 찾아오는 것을 참지 못한다. 욕구불만이야말로, 예전에 거부당했던 사랑에 대한 부가적인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신을 배반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주 예전에,
간신히 기억날 만큼 오래 전에 자신을 배반했던 사람들에게 까지 원한을 품는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다시 한 번 그의 요청을 거부한다면? 그러면 그는 아주 유치하게 굴 것이다. 맨 앞줄에 가면 안 된다고 했더니, 심통이 나서 보란듯이 맨 뒷줄에 가서 서는 초등학생처럼 말이다.
그런 사람의 불행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좀 봐!' 라고 보이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불행이다. 다른 사람들도 가능하면 내가 겪었던 불행을 겪어야 하니까,
이따금 저는 건강하고 평안하게 잘 지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잘 지내는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닐 것 같아요. 내가 다른 사람이 된다면, 나는 죽어버린 거잖아요.
고통은 제 삶에 필수적인 겁니다. 제 고통은 사람들이 저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이유가 되지요. 저는 다른 사람들을 대하면서 계속 불행한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이런 사람들은 마치 바라는 것이 충족되지 않는 불만상태에서 살아기로 스스로 선택이라도 한 듯하다. 어떤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 이미 그들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는데, 만일 그들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면 그런 기대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타자에 의존하는 만큼 타자 역시 자기들에게 의존하기를 바랄 것이다.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 두려워요. 다른 사람 없이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가 두려워요. 그 사람 역시 나 없이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 두려워지듯이 말이예요.
그들은 머지않아 공격성과 증오를 통해서만 살아있다는 느낌을 얻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그런 두려움을 맞닥뜨리느니 다른 이들 앞에 불행한 얼굴을 내보이는 편을 선호할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오만 가지 근심을 내보이며, 불행의 증거들을 가능한 한 많이 제시하기를
주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모든 공격을 면한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은, 대개 공격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법이니까. 대신 그들은 완곡하고 교묘한 수법을 써서 자신의 공격성을 표출한다.
어째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냐는 힐책을 살기 힘들다는 넋두리로 위장해서 늘어놓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성에 대해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 떄문에 겪는 고통 혹은 질병을 모두가 볼 수 있게끔 내세운다.
그들은 희생자 역할을 택하고, 질투심보다는 동정심을 유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불만은 공격적 충동과 그로 인한 죄책감이 절충된 결과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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