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이미지 벗어나기 |
조건화된 어린 시절 이미지 벗어나기
- 유년기의 모든 관계들에서 하나의 관계의 모델이 형성되서 우리 안에 깊이 새겨진다. 모국어가 우리에게 친숙하듯이, 어떤 고통들은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해서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고통을 감내하거나 다시금 맞닥뜨려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일종의 노스탤지어를 통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상황들 못지않게 우리에게 친숙한 고통들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특별히 친밀감을 느끼는 말, 시선, 행동이 있다. 우리는 그런 말이나 시선이나 행동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에 어떤 행동이나 접근은 우리에게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기피해 버린다.
우리 세계에 익숙하지 않고 유별나 보이는 것이, 불안과 혼란을 자애는 것은 당연하다. 세포가 특정 분자만을 받아들이듯이, 우리 또한 특정한 메시지 유형들만 받아들이도록 조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배운 대로 반응하고, 어렸을 때 보았던 행동대로 행동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렇게 생존을 위한 반응을 배운다
- 어떤 상황에서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차츰 조건화되면서 그 반응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진다. 무슨 이유로, 어떻게 해서 그런 방식이 자리 잡았는지를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느낌을 지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표시하는 애정과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곤란을 겪는다. 그들은 그런 애정이 사라질 경우 괴로워질것이 두려워서 아예 처음부터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들은 어른이 되서도, 물이 부족한 곳에서 사는 데 익숙해진 식물처럼 애정의 표시를 아주 조심스럽게 절제하면서 받아들인다. 별것 아닌 다정한 제스처도 그들에겐 너무 과도하다. 그 정도만으로도 그들이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벗어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몸짓이 그들의 고통, 그들의 애정결핍을 치명적으로 건드리는 것일 수 있다. 그들은 낯설기 때문에 공포와 불안밖에 감지할 수 없는 애정표현들을 피해서 차라리 도망가는 쪽을 택할지 모른다. 너무나 오랫동안 갈망해 왔기에, 정작 나타나면 거부하고 마는 것이다.
저는 칭찬을 받으면 금세 그 반대로 행동합니다. 재미있고 호감가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려는 듯 일부러 더 무뚝뚝하고 쌀쌀맞게 굴지요.
저한테 아주 호의적인 제안을 받아도 기쁘기는 커녕 공격이라도 당한듯 마음이 불편하기만 해요.
이들은 정식적으로는 아직 어린 소년 혹은 소녀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듯하다. 화가 나서 불끈 쥔 주먹을 새록새록 샘솟는 원망 때문에 풀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한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하겠는가?
공격성이 존재방식으로 굳어져버렸는데 무엇으로 그것을 대체한단 말인가? 과거와 화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나 자신과,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화해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받았어야 할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 그 기억을 지우기란 매우 힘들다. 하지만 모범을 보여주지 못한 부모를 용서한다면, 타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마음을 열지 못한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주어질 것이다.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다르게 행동한다면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관계가 실패했을 때
- 이제 다시는 사랑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될 때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관심을 잃거나 도망가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런 때는 다른 사람이 기꺼이 우리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형벌을 받고 있는 기분을 느낀다. 타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아무런 확신도 없다. 이런 마음상태에서 공격이라도 당하면 그 공격을 일종의 '정상적인' 형벌로 간주하기 때문에
더욱더 참담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과거에 저질렀던 비난받을 만한 행동에 대해 타인들이 뒤늦게 보복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우리를 쫓아다니던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그런 대점을 받아도 싸다고 믿게 된다.
저는 아직 저지르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도 죄책감이 들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저를 부당하게 대하면, 내가 뭔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저렇게 비난을 하고 공격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죠.
어렸을 때 할 수 없었던 일을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할 수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항상 우리를 무능력자로 보는 이들에게 어떻게 원한을 품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무척 슬퍼져요. 저는 항상 그런 결과에 도달하고 만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다음에 저를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사람들을 원망하기만 하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어린시절의 고통을 아는 사람은,
- 그 고통이 언제 되살아날지 몰라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불행히도 이들은 예전과 비슷한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갈 수 있는 상대를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기 쉽다. 예를 들어, 엄마의 바람기 때문에 괴로워했던 소년은,
성인이 되서 이상하게 자기 엄마와 비슷한 여자에게 끌리고는 한다. 심지어 상대 여자를 자기 엄마처럼 위험한 유형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 자신이 여자들은 그래야 한다고, 혹은 여자들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여자들이 자기에게 입힐 수 있는 모든 상처들을 피하겠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스스로 여자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남자가 거리를 두자 여자 또한 거리를 두고, 그 남자를 멀리한다면, 그는 '여자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한다.
여자에게 버림받는 것이야말로 그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 그런 파국을 초래했다는 점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각 사람은 저마다 자기가 두려워하는 바로 그것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자기가 품고 있던 선입견을 현실로 만들고야 마는 셈이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반응하는 고통 때문에 중요한 사실을 잊는다. 내가 두려워하는 타자의 힘, 그 힘을 타자에게 준 장본인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고통에 눈이 멀게 되면,
- 상대는 자기보다 더 힘겨워하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 상대 역시 본인만 아는 고통들로 가득 찬 유년기를 보냈을 수 있다.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남을 사랑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타인에게 보내는 냉랭한 눈길, 매몰찬 거부가
사실은 자기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굉장히 높게 평가해 주는 사람을 도리어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은 그 사람의 사소한 몸짓 하나에도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에게 주어진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그는 그저 우리의 욕망과 우리의 절망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인 것이다. 그는 우리를 실망시킴으로써 이 절망을 일깨운다.
또한 그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창조물의 피그말리온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준다. 그는 가장 모순적인 기대들을 충족시킬 수 있고, 우리는 그를 괴롭히는 학대자 역과 학대당하는 희생자 역을 번갈아가며 맡게 된다.
우리가 그에게 부여한 힘은 단지 우리 상상의 부산물일 뿐이다. 그 점을 깨닫기 위해서는 가끔 과거와의 유착을 결연하게 끊으면 된다. 그러나 쉬지 않고 반복해서 연기하는 그 역할만이 우리에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 위험한 게임을 그만두지 못한다.
원하는 것을 얻더라도 평화는 일시적이다
- 불안을 다시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하지 않은 것, 할 수 없었던 것을 향해 욕망을 조정할 것이다. 불가능한 욕망의 대상을 향해서 끝없는 도피행각을 계속해야 한다. 절대로 멈추지 않을 이 활동, 모든 활력이 집결된 이 움직임을 통해서만 그는 흥분을 얻는다.
불안과 갈등의 근원인 이 모든 양상은 전달되고, 습득되며, 반복된 행동 양식으로, 고쳐지지 않는다.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반복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고통은 끊임없이 계속될 뿐이라고 믿게 만드는 한계들이 주어져 있다.
그 한계들과 맞설 대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에서는 물론,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있어서도 우리와 우리의 생활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로써 우리 안에서만 가능한 것을 더 이상 외부에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조금씩 자각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 자신의 이미지 뒤로 숨지 않는다. 우리는 그 이미지를 타자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강박관념의 대상으로만 삼아왔다. 이제 자신을 더욱 사랑하면서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더욱 확실하게 타자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평가하며, 나의 행동방식과 일치하는 이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우리 존재는 더 이상 타자의 인정이나 칭찬에 따라 그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확인받고, 안심해야만 살 수 있는 의존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다른 사람 마음에 들기를 원하고, 외부의 격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없어진다고 해서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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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심리학
Reviewed by 해결사
on
5월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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