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창조력 |
내 안의 창조적 역량 깨우기
- 감정에 좀더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 우리의 이성적 추론능력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비이성적인 것일수록, 우리를 매료한다는 부조리한 믿음을 너무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은 제가 느끼는 바를 신뢰하는 법을 배웠지요. 저는 제 직관을 따라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감정과 직관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가장 빈번하게는 지성을 활용하지만, 사실상 정신적 활동과 감각의 세계를,
이성적 판단과 직관의 차원에 더 많이 속하는 지식을 완전히 분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뇌는 감각이 제공하는 정보들을 기억하고 분류하고 분석하며, 그 풍부함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관인데, 그런 정보들을 끊임없이 사용하지 않고서야 지적 활동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그리고 감각의 행렬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상적인 구성, 관념의 형성, 사고체계의 발전이 아니다. 모든 성공한 작품은 깊은 만족과 더불어 산고를 방불케 하는 고통도 안겨주게 마련이다.
고통을 통해서 변화하기
- 어떤 행동들은 우리의 성격을 구성하는 일부다. 사람들은 흔히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격이 바뀌기 힘든 이유가 반드시 우리의 행동 패턴이 굳어져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받는 교육에서 왜곡들은 쓸데없는 고통을 지나치게 부여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변화들을 불러오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모든 요구들에 대해 오랫동안 복종하며 살아온 탓에, 결국 그 요구들에 부응하기 위해서 더욱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어느 날 문득 고통으로 일그러진 자기 육신을 발견한다고 한들 놀라울 것이 뭐가 있을까?
우리의 몸은 고유의 표현들을 이용해서 우리 자신도 항상 의식하지는 못하는 깊은 불만에 반응한다. 그러나 그 반응을 우리가 항상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에는 항상 그에 대한 저항을 반영하는 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 삶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도 있는 생각에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차라리 우리를 언짢게 하는 것들을 보지 않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어떤 변화를 맞이하기 전 기간이나 변화에 대해서 생각만 해도 우리는 불안정하고 걱정스러운 상태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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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창조력 깨우기
Reviewed by 해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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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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