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떄가 있다 |심리학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때


- 사람이 젊을 때가 그렇다.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에 비하면, 고통이라는 개념은 부수적이다. 젊을 때는 이성적으로만 산다든가, 충동을 가늠한다거나 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젊은이에게 유보적인 삶은 삶이 아니며,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것은 구속일 뿐이다. 


미래가 나에게 활짝 열려 있는 듯 보였습니다. 나의 능력과 가능성에는 한계가 없을 것 같았어요. 나중에야 나는 실패와 의심과 두려움을 발견했습니다. 인생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 전까지 제기해 보지 않았던 의문들을 제기하게 되었죠.


그러고 나서야 나 자신이 항상 무시하고 싶었던 나의 약점을 의식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약점을 갖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죠. 


- 세월과 더불어 우리는 참을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계속 참는다는 것이, 혹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도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경험적으로 배운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기대를 품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아무것도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귀에 대고 소리질러봤자 소용없다. 보려 하지 않는 이에게 보란 듯이 행동하는 것, 모든 접근을 거부하는 이에게 다가가는 것도 소용 없다. 


고통을 거부하기로 결심했어요. 이제 내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것이 나를 아프게 할 수 있는지 정서적으로나 전문적으로나 잘 알고 있어요. 더 이상은 항상 불행한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 놓이는 것을 피하고, 내 문제들에 대한 나의 입장을 스스로 바꾸고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의 힘은 자신의 약점을 알고, 그것을 보호하는 데서 나온다. 우리가 강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행동들로 그 약점을 부정해서는 절대로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없다. 이런 행동들은 끝에 가서는 아주 큰 위험을 낳을 수도 있다. 


일단 실망하게 되면, 그 애통함은 더욱 길고, 고통스러워져서 우리가 무시하고 싶었던 실패들을 발견하게되고, 괴로워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떄의 고통은 우리가 무방비상태인 만큼 더욱 더 강렬하고 혹독할 것이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불안을 야기하는 상황을 '떠난다는' 것이, 그 상황에서 자신을 빼낸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울 수 있다. 더 큰 아픔만 낳을 뿐인 괴로운 대화를 그만둔다는 것이, 더 이상 상대의 공격성을 감내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거리를 두는 것이, 

파괴적이기만 한 관계를 타자가 제시할 때 거기에 대해 한계를 긋는다는 것이, 아주 힘겨울 때가 있다. 어떤 이들은 역설적으로, 고통이 타자와의 분리를 낳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타자와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혹은 특정 방식대로 취급받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다른 식으로 취급받는 것은 생삭할 수도 없는 듯하다. 그래서 보상이 될 만한 대우를 기대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이들에게 더 애착을 품기도 한다. 고통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모르고, 그 고통 속에 혼자 남겨질 수는 없으니까. 


그런 사람에게라도 매달리는 것이다. 그럴 때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 관계를 변화시켜 마침내 자기가 보기에도 확연히 회복된 모습이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저는 그 사람이 나를 인정하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저 자신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불안감이나 불편한 감정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 가능하면 최초의 신호들을 감지하는 그 순간부터 대응에 나서야 한다. 불안은 일단 뿌리를 내리면, 모든 행동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고, 

사소한 결심 한 가지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벗어나기 힘든 심연에 빠지게 되고,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억제(inhibition)상태에서는 모든 자발적인 충동마저 사라진다. 우리는 모든 행동들을 진압해서, 결국 머릿속으로만 이리저리 움직이게 된다. 


저도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는 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그럴때면 제가 마치 두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저는 어리석게 아무것도 안 하고, 불행한 상태로 남아 있지만, 또 다른 나는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기도 하고, 상소리를 퍼붓기도 하고, 내 목에서 차마 넘어오지 않고 있던 온갖 욕설을 내뱉는 거예요!!


이런 억제는 같은 유형의 불안을 낳은 바 있던 상황에 다시 한 번 놓이게 될 때 더욱 강력해진다. 불안이 나타나자마자, 그것이 현재 갖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 불안을 상기시키는 과거에 대한 의미까지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더 이상 같은 유형의 행동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 불안은 대개 우리에게 행동을 취하라는 신호로 나타난다. 우리 생활 양식의 어떤 요소들을 다시 문제 삼고, 우리를 괴롭히는 현재의 상활을 변화시키라는 신호인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해가 되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그 해악은 '위험신호' 없이는 절대로 감지될 수 없다. 우리는 욕망에 맞지 않는 상황들에 짓눌려 살아가면서, 우리의 지평을 넓히고픈 욕구를 느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장을 확장하거나, 변화시키고픈 욕구 때문에 숨조차 쉴 수 없게 될 것이다. 


습관의 힘 


- 습관의 힘은 온갖 제약들을 불러온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제약들은 타고난 천성처럼 자연스러워진다. 사회적 환경이나 주변의 정서적 요구들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압박을 견뎌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압박은 우리 생활양식에 있어서 어떤 변화도 꿈꿀 수 없게 만든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악순환에 휘말린 느낌이 든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이 기제의 결함과 위험을 똑똑히 알지만, 특정 징후들이 개입되지 않는 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징후들은 바로 고통, 무능함, 피곤으로, 긴급하고 절대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모든 활동을 정지시킨다. 이 신체적 불능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즉 우리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나타내는 이런 뚜렷한 증거가 없다면, 

우리가 의무로 간주하는 모든 활동들이 중단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 언젠가는 우리 안에 체화되어, 자연스러운 방어기제가 되기를 바래야 한다. 

이제 저는 현실에 대해 행동으로 맞서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생각만으로 괴로워하는 짓은 그만둘 겁니다. 그런 일은 저절로 일어났습니다. 저의 의지와는 거의 무관하게 행동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바라는 방향대로의 행동이예요.


반응은 우리에게 뚜렷한 증거를 제공한다


-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의 느낌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 결과,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할 필요도 없어진다. 우리에게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는 스스로 알고 있다. 

기분이 좋으면 그냥 있으면 된다. 좋지 않으면 떠난다. 


거의 절대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현재의 것이든, 예측 가능한 것이든 간에, 어떤유형의 위험이나 공격과 맞닥뜨릴 때, 경험적으로 대응이나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도피를 택하기 쉽다. 

앙리 라보리의 연구에 따르면, 도피의 부재가 수많은 신체적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또한 우리는 무술에서 그렇듯이 상대의 공격을 살짝 피하거나 아예 공격을 허용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적이 강력한 공격 충동으로 스스로 균현을 잃은 채 자신의 공격성만을 직면하게 만드는 것이다. 싸울 상대를 잃어버린 공격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게 마련이니까.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떄가 있다 |심리학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떄가 있다   |심리학 Reviewed by 해결사 on 5월 25, 2023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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